한국교회에 영적 대각성과 제2 선교부흥이 필요한 시점이 됐다. 최근 터키에서 사망한 고 김진욱(왼쪽) 선교사. 오른쪽 사진은 1956년 남미 에콰도르 아우카 부족에 복음을 전하기 위해 정글에 들어갔다가 원주민에 의해 사망한 선교사들 모습. 에드워드 맥컬리, 피트 플레밍, 짐 엘리엇(왼쪽부터). 국민일보DB
사랑은 ‘낭비성’을 갖고 있다. 세계의 오지인 에티오피아 짐마 지역에 가면 그들은 묻는다. 그 많은 돈을 들여 힘들게 고생하며 왜 여기까지 오느냐고. 요즘은 프러포즈 이벤트를 위해 레스토랑을 통째로 빌리기도 한다. 이 얼마나 낭비인가. 막달라 마리아는 보물 같은 옥합을 깨뜨려 값비싼 향유를 예수께 부었다. 역시 낭비적이다. 그런 의미에서 순교는 정말 낭비적이다.
효율은 좋은 것이나 모든 것은 아니다. 하나님의 미련한 것이 인간의 지혜보다 탁월하다. 순교의 씨앗 하나를 심어 100배, 1000배, 1만배의 수확을 거둔다.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요 12:24) 예수님은 밀알이셨고 스데반 집사도, 사도 바울도, 토마스 선교사도, 그리고 얼마 전 터키에서 순교한 김진욱 선교사도 한 알의 밀알이었다.
2007년에도 영광스러운 순교가 있었다. 그런데 세상은 ‘아프가니스탄 피랍 사태’라고 이야기한다. 그러나 이 스토리는 분명 아름다운 순교의 이야기였다. 그들은 당시 가장 위험한 지역에서 고통받는 영혼들을 품었다. 그들에게 복음을 전하기 위해 주님의 사랑을 실천하다 숨진 배형규 목사와 심성민 형제의 선교스토리다.
이 스토리는 안전과 몸값 문제라는 전혀 다른 이슈로 국민적 관심을 끌었고 무모한 선교 도전에 대한 격렬한 비난으로 이어졌다. 이 비난의 배후에는 세속주의와 상대주의적 효율, 그리고 맘모니즘이 자리 잡고 있다. 사실 이 일은 하나님이 행하신 일이고 한국교회의 영광이며 거룩한 사건이었다.
이번에 터키에서 일어난 김 선교사의 피살은 명백한 순교다. 시리아 난민들, 무슬림끼리 죽이는 처절한 살육의 현장을 빠져나온 사람들, 평생 몸서리칠 엄청난 트라우마를 겪고 깨진 마음들, 잃어버린 영혼들을 구하기 위해 십자가의 사랑을 실천하다 피 흘리며 비명에 떠난 고 김진욱 선교사.
이 사건을 면밀히 따져보면 우연히 강도를 만난 게 아니라 계획적 살인일 수 있는 정황이 많다. 시리아 난민들에게 주님의 사랑을 실천하며 복음을 전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는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막 16:15)는 지상명령의 성취를 위해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막 12:31)는 위대한 계명을 실천하다 주님께 부르심을 받았다.
놀라운 일은 이 사건 이후 터키 교회가 움직이고 있다는 것이다. 안락함을 깨뜨리는 은혜의 물결이 일고 있다. 순교지인 디야르바크르에 있는 유일한 개신교회에서 드린 김 선교사 천국환송예배에서 현지인 교회 지도자는 이렇게 선언했다.
“어제오늘 저희 친척들이 제게 전화했습니다. 당신도 조심하라고…. 내가 무엇을 조심해야 합니까. 복음을 전하지 말아야 합니까. 오히려 나는 더 복음을 전하겠습니다. 수많은 영혼을 구원하기 위해 목숨 다해 복음 사역에 집중하겠습니다. 그분들을 예수님의 품으로 이끄는 데 전력하겠습니다. 김진욱 사역자의 순교로 이곳 터키 동부에 하나님께서 새로운 영적 변환점을 주셨다고 믿습니다. 앞으로 놀라운 영적 부흥이 있을 것입니다.”
이번 천국환송예배에는 터키 곳곳 현지인 교회에서 많은 조화를 보내왔다. 먼 곳까지 비행기를 타고 온 현지 사역자들도 많았다. 터키 전역에서 크리스천들이 추모하고 있다. 이 순교를 통해 터키 교회가 부흥하고 수많은 영혼이 물밀 듯이 주님께 돌아오는 역사가 일어나길 기도하고 있다.
하나님께서 지금 이 일을 허락하신 이유는 간단하다. 영적 대각성이나 선교 부흥은 순교의 피를 요구하기 때문이다. 진정한 부흥은 선교적 삶을 순교적으로 살아낼 때 일어난다. 참새 한 마리도 하나님 허락 없이 떨어지지 않는다. 이 거룩한 순교 사건은 우연이 아니고 무모함도 아니다. 하나님의 절대 경륜이요 절대 섭리이다. 한국교회를 향해 성경적 영성과 야성을 회복하라는 메시지이다.
지상 대명령 성취를 위해 한국교회를 선교적 구조로 재편성하라는 명령이기도 하다. 교회 부흥을 ‘얼마나 많이 모이느냐’에서 ‘얼마나 많이 파송했느냐’로 재정의할 때가 됐다. 한국 선교도 ‘얼마나 많이 파송했느냐’에서 ‘얼마나 많은 순교자를 배출했느냐’로 재정의할 필요가 있다. 이를 붙잡는 영적 감각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 한국교회는 반드시 하나가 돼야 한다. 한국교회가 하나 되면 이 땅에 복음의 문이 다시 열리고 선교의 고속도로가 생길 것이다. ‘만인 제사장주의’에서 ‘만인 사역자, 만인 선교사주의’로 패러다임을 전환해야 한다. 선교 자원들을 끌어내 한국 선교계의 기도제목인 ‘타깃 2030’의 목표(10만 선교사, 100만 자비량 사역자)를 향해 매진해야 한다.
현실에 안주해 안전지대에 머무는 ‘유람선 신앙’에서 벗어나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는(딤전 6:12) ‘전투함 신앙’으로 회복하라는 하나님의 경고가 들려 온다. “오직 하나님의 능력을 따라 복음과 함께 고난을 받으라(딤후 1:8)”는 사도 바울의 유언이 다시 들려온다. 한국의 성도들이여, 영적인 잠에서 깨어 일어나라. 이왕 고통을 받고 살 바엔 모든 고통을 그리스도를 위해 바꾸자. 이왕 죽을 바에는 그리스도를 위해 죽고 이왕 살 바엔 그리스도를 위해 살자.
영적 대각성과 제2의 선교부흥을 위해 주님은 지상 대명령을 다시 선포하고 계신다. 이제 선교의 마지막 보루인 이슬람권과 힌두권, 무신론권에 복음을 전하자. 이번 순교는 세계 복음화를 완성하고 그리스도의 충만을 모든 영역에 실현해 하나님 나라를 완성하라는 초강력 메시지이기도 하다.
순교에는 두 가지가 있다. 복음을 전하다 순교자가 되는 길(세계복음화 완성)이 있고, 복음을 삶으로 녹여내는 선교적 삶의 길(하나님 나라 완성)이 있다. 그런 의미에서 한국교회는 선교지향적 공동체가 돼야 하고 선교적 삶을 살아내는 선교적 공동체가 돼야 한다. 그러나 선교를 지향하지 않는 선교적 삶은 아무 의미가 없다.
예수님은 “천국 복음이 모든 민족에게 증거되기 위하여 온 세상에 전파되리니 그제야 끝이 오리라”(마 24:14)고 말씀하셨다. 성도들이여 땅끝까지 복음을 전하자. 제2의 세례요한이 되어 주님 만날 길을 예비하자. 마라나타.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황성주 사랑의공동체 회장, 선교통일한국협의회 공동대표, 한국세계선교협의회 부이사장
[출처] - 국민일보
[원본링크] - http://news.kmib.co.kr/article/view.asp?arcid=092411118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