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2025.06.17 11:24

국민의 투표에 의해 새로운 대통령이 선출됐다. 국민이 지도자를 뽑는다는 것은 국민이 지도자를 위해 있지 않고, 지도자가 국민을 위해 있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주권재민(主權在民)이라는 헌법정신은 인류 문명의 선물이다. 그런데 우리 사회는 이렇게 좋은 선물을 잘 활용하지 못하는 것 같다.
우리 사회에 투표를 전쟁으로 생각하는 풍조가 만연하고 있다. 진보와 보수와 중도는 다양성으로서 우리 사회의 건강한 자산이다. 연령별로, 성별로, 지역별로 생각이 다르다는 것은 우리 사회에 다양성이 존재한다는 표시다. 그런데 많은 이들이 다양성이라는 좋은 자산을 싸움판으로 해석하고 있다. 나라를 위해 투표하지 않고, 자기 편을 위해 투표하고 있다. 온 나라가 적대적으로 대립하는 모양새다. 진보도, 보수도, 중도도 우리 국민이다. 모든 국민은 나라를 위해 투표를 해야 한다.
우리 사회가 대립한다는 것은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적대적으로 대립해서는 안된다. 더구나 적대적 대립이 보편화돼서는 안된다. 적대적 대립이 보편화되면 우리 사회가 병들게 된다.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의 저자, 한나 아렌트는 ‘악의 평범성’을 지적했다. 600만이나 되는 유대인을 학살한 비극적 사건에 악마들이 존재하는 줄 알았는데, 너무 평범한 사람들이 그 악에 동조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우리 사회도 마찬가지다. 적대적 대립이 일부 극렬분자들의 소행이 아니다. 정치 지도자들이 불을 지피고, 전문가들이 확대 재생산하고, 언론이 바람을 넣으면서 적대적 대립이 전국민에게 보편화되고 있다.
기독교현실주의자이자 정치신학자인 라인홀드 니버는 <도덕적 인간과 비도덕적 사회>에서 개인은 도덕적일 수 있지만 사회는 도덕적이지 않다고 설파했다. 개인은 양심에 영향을 받지만 집단은 양심의 얼굴이 없다고 했다. 인간이 집단 속에 숨으면 집단 이기주의에 편승해 악을 저질러도 문제의식을 느끼지 못한다는 것이다. 우리 사회는 진보와 보수가 집단을 이뤄 이기적으로 작용하고 있다. 집단에 이익이 되면 정의(正義)고 반대는 불의(不義)다. 스스로를 성찰할 수 있는 정의가 존재하지 않는다. 결집하지 않으면 진다고 생각해, 집단 내에 다양한 의견을 허용하지 않는다. 광적인 충성을 하는 사람일수록 돋보인다고 생각하고, 집단 내에서도 동조하지 않는 사람은 죽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결집이 단합이 아니라, 숨통을 조이는 것 같다.
반대편은 악마화한다. 악마화하면서 상대적으로 자신은 선한 줄 안다. 상대를 악마화할수록 더 선해지기 때문에 악마화를 확대 재생산한다. 중세 말에 나타났던 마녀사냥을 떠올리게 한다. 마녀사냥의 목적은 마녀를 찾는 데 있지 않다. 마녀를 만들어 희생을 시키고, 사회의 돌파구를 찾는 데 목적이 있다. 마녀사냥이 악에 무감각한 것처럼 우리 사회는 악마화에 무감각하다. 오히려 그것이 사회를 살리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건강한 가치의 생태계가 말살되고 있다. 진보와 보수, 양 진영이 대결하면서 집단 이기주의에 충성하다보니, 건강한 가치에는 관심이 없다. 현실성이 없는 이상주의자의 유희로 취급한다. 우리 사회가 민주화 되면서 지성인들이 건강한 가치를 제공했다. 그러나 요즘은 지성인들도 양 진영으로 나눠져서 적대적 대립을 심화시키고 있다. 기독교도 혼란한 사회에 방향을 제시하는 선지자 역할을 포기하고 양 진영에 편입하고 있다.
유튜브의 알고리즘은 문제의 심각성을 가중시키고 있다. 유튜브의 알고리즘은 검색자의 성향을 맞춰주고, 편리를 도모하기 위한 것이지만, 반면에 콘텐츠의 편식을 조장해 객관적, 비판적 사고를 마비시키고 있다. 나와 다른 진영의 사람들은 나와 다른 콘텐츠만 보고 있다. 정보를 편식하면서 그 세계에 갇혀 우물 안에 개구리가 되고 있다.
선거가 끝났다. 새로운 대통령을 중심으로 단합해야 할 때다. 그러나 적대적 대립의 보편화는 여전하다. 우리 사회에 희망을 만들어내는 대안이 절실하다. 적어도 기독교는 집단화에 편입하기보다 선지자적 역할을 할 수 있어야 한다. 기독교가 이런 역할을 해야 여럿 중의 하나가 아니라, 사회의 희망이요, 대안이 될 수 있다. 또한 지성인의 역할이 중요하다. 지성인이 적대적 대립의 보편화에서 일부가 되지 말고, 고리를 끊는 역할을 해야 한다. 지성인은 합리적 사고의 훈련을 받은 사람이다. 훈련받은 사고력을 집단 이기주의에 충성하는 데 사용해서는 안된다. 사회에 다른 것을 볼 수 있게 하고, 비판력을 키우고, 사회를 선도할 수 있어야 한다. K-콘텐츠로 국운이 융성하는 이때를 잘 관리하고, 우리 사회가 건강해지기 위해 적대적 대립의 보편화에 대한 문제의식이 일어나길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