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6.26. 국민일보
북한 3대 신앙 가문 추적한 ‘그루터기’ 펴낸 김병로 서울대 통일평화연구원 교수
북한이 1950년 펴낸 ‘조선중앙년감’은 북녘의 개신교 인구를 이렇게 밝힌다. “북반부에 기독교 교회수는 약 2000을 산(算)하며 교도(敎徒)는 신교만 약 20만명에 달한다. 신교에서 현재 장로수는 2142명이며 목사수는 410명, 전도사수는 498명이다.” 국내 교회사가들은 해방 당시 북녘의 기독교 교세를 ‘3000 교회, 30만 성도’로 본다. 북한 기록과 비교하면 해방 이후부터 6·25전쟁 직전까지 1000개 교회, 10만명이 줄어든 셈이다. 2020년 4월 현재 북한이 밝힌 기독교인은 1만2000명이다. 28만8000명의 기독교인은 어디로 간 걸까.
김병로(60) 서울대 통일평화연구원 교수는 이 문제에 주목한 북한학자다. 2003년 ‘그루터기 프로젝트’란 이름으로 공산정권 이후 증발한 북한 기독교인을 추적했다. 그의 최근작 ‘그루터기’(박영사)는 2017년 김 교수와 평화나눔재단 소속 연구원 3명이 해방 이후 북한교회를 다닌 신앙인 후손 10명을 심층 면접한 내용을 담은 것이다. 모두 북한에서 3대 이상 믿음을 유지한 가정 출신으로, 그가 이전에 진행한 미국 국제종교자유위원회(USCIRF) 연구사업 면담자 80명 중 선별했다. 지난 23일 서울 관악구 서울대 연구실에서 김 교수를 만났다.
그가 17년간 그루터기 프로젝트를 진행한 동력은 일종의 부채의식 때문이다. 김 교수는 “북한 형제자매가 신앙 때문에 무참히 짓밟힐 동안, 남한 기독교인은 반세기가 넘도록 이들의 아픔을 돌아볼 생각조차 안 했다”며 “북한 연구를 하는 신앙인으로서 항상 죄스러웠다”고 했다.
책이 정의하는 ‘그루터기’는 ‘6·25전쟁 이후 공산정권의 탄압으로 유형 교회를 떠나 개별적으로 흩어진 신앙인’이다. 북한은 58년쯤 중앙당 집중지도를 실시해 ‘종교인과 그 가족’을 분류했다. 그 수가 45만명이었다. 이후 체포 추방 등 종교인 탄압이 본격화됐다. 적지 않은 종교인과 그 가족이 최북단 함북 온성으로 추방됐다.
북한 체제에 적극 협력하면 탄압과 추방을 피할 수 있었다. 72년 출범한 ‘조선기독교도연맹’(현 조선그리스도교연맹)에 소속된 그루터기다. 이들은 북한 전역 520여곳의 가정예배소와 봉수교회(88년) 칠골교회(92년)에 동원됐다. 그는 “봉수와 칠골교회의 경우 지금도 소수의 관리인을 제외한 대부분의 성도가 과거에 유명한 기독교인의 후손들”이라며 “가정예배소에도 가족적인 배경으로 당의 부름을 받은 이들이 적지 않다”고 했다.
이런 맥락에서 ‘북한이 공인한 지상교회는 가짜고 지하교회만 진짜’라는 주장은 어폐가 있다. 김 교수는 “지하교회는 95년 ‘고난의 행군’ 때 중국에서 복음을 접한 이들이 주축이 된 신앙공동체다. 여기나 지상교회나 북한 당국이 완전 장악하고 있는 건 매한가지”라며 “지하교회는 미국과 남한 단체가 연계돼 있어 북한 보위부와 정보부가 특히 주시한다. 이쪽으로 돈과 정보가 들어오니 잡지 않는 것뿐”이라고 했다.
지상교회와 지하교회 어느 쪽이든 북한 사회에서 신앙생활이 쉽지 않음은 자명하다. 책의 그루터기 사례 중 대다수가 예수란 말을 북한에서 전혀 듣지 못했다. 대신 ‘하늘은 다 듣고 있으니 하늘에 빌라’는 식의 말을 부모나 할머니에게 들었다. ‘남을 도와줘라’ 등 윤리적 실천을 강조하고, 술·담배를 하지 않는 것도 그루터기 가정의 공통점이다. 김 교수는 “그간 이해할 수 없던 조부모나 부모의 행동을 탈북 후 교회를 다녀보니 알게 됐다는 그루터기 사례가 적지 않았다”고 했다. 그는 북한에 그루터기가 7만명 정도 있는 것으로 추산했다.
김 교수는 “초대교회 성도가 카타콤에서 고난의 시간을 보냈듯이 북녘 성도는 75년간 압제 가운데 생존했다. 대단한 역사이자 믿음”이라며 “한국교회가 이들의 절개를 주의 깊게 살펴 스스로 자성해 다시 부흥할 수 있길 바란다”고 했다.
책은 조만간 영어와 중국어, 몽골어로 번역된다. 후속작을 위해 그루터기 2차 심층 면접도 준비 중이다. 필생의 사업은 언제쯤 끝날까. 그는 “통일의 그 날까지 할 것”이라며 미소지었다.
양민경 기자 grieg@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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