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6.25. 뉴스M [인터뷰] 김병로 서울대 통일평화연구원 교수, 최근에 북한 기독교인 다룬 "그루터기" 출간 [뉴스M=황재혁 기자] 북한이 지난 16일 남북한연락사무소를 폭파한 이후에, 남북관계가 급격하게 경색되었다. 북한의 급작스러운 행동에 남한 역시 강경하게 대응하며 앞으로 남북관계가 어떻게 흘러갈지 그 누구도 섣불리 예측하기 어려운 상황이 되었다. 이에 본지는 오랫동안 북한 사회와 북한교회를 연구한 김병로 서울대 통일평화연구원 교수를 만나서, 남북관계의 첨예한 현안을 진단하고, 최근에 김 교수가 북한선교 전문가들과 공저한 "그루터기"의 저술 배경을 직접 듣는 시간을 가졌다. 김 교수는 미국 럿거스대학교 사회학 박사학위를 받고, 통일연구원 북한연구실장을 역임하다가, 현재는 서울대 통일평화연구원에 있으면서 통일을 준비하는 기독학자의 모임인 [한반도평화연구원]의 부원장을 맡고 있다. 다음은 인터뷰 전문.
Q 지난 16일 북한이 개성공단에 위치한 남북한연락사무소를 갑작스럽게 폭파한 이후로 남북관계가 악화 일로를 걷고 있는데, 현재 상황을 어떻게 진단하십니까?
A 표면적으로 보이는 북한의 행동은 지난 하노이 북미회담 결렬에 대한 남측의 책임을 묻기 위해서인 것 같습니다. 그러나 저는 단순히 눈에 보이는 것 이면에, 북한과 남한의 인식 격차가 이번 문제의 본질이 아닌가 싶습니다. 제가 지난 [북한, 조선으로 다시 읽다]에서 쓴 것처럼, 북한은 남한과 달리 국제적으로 개방되어 있지 못한 ‘자기 폐쇄적 사회’입니다. 북한은 말한 것을 곧이곧대로 지키고 믿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북한은 남한이 협상 과정에서 이야기한 것을 모두 그대로 지킬 것이라고 믿었을 겁니다. 문재인 정부는 지난 남북정상회담을 통해 북한에 여러 가지 약속을 했을 겁니다. 남한에서는 그 약속을 여러 상황에 따라 못 지킬 수 있음을 북한이 이해해 줄 것이라고 기대했지만, 북한은 그러지 못했습니다. 저는 이러한 남북 간 인식의 격차가 그동안 계속 나타났고, 지금도 여전하다고 보는 입장입니다.
Q 그동안 북의 강경한 경고와 달리 남북한연락사무소 폭파 직전까지 남한 정부는 다소 낙관적 태도를 보여 왔습니다. 그러나 사무소 폭파 이후에 남북이 첨예한 대립을 하고 있는데, 남한이 북한과의 관계를 어떻게 개선해야 할까요?
A 사실 남한 입장에서는 북한과의 관계를 당분간 수습하기가 쉽지 않아 보입니다. 일단 북한에서 남한을 더 신뢰하지 않기 때문에 그 어떤 말도 통하기 어렵습니다. 그래서 지금 상황에서는 남북 사이의 중재자가 필요합니다. 남북이 직접 소통하기 어렵다면, 장차 중국을 통해서 갈등이 해소될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러나 당분간 남북 사이의 냉각기는 불가피합니다.
Q 김여정 노동당 제1부부장의 급작스러운 부상과 권력집중이 김정은 국방위원장의 건강에 대한 여러 의심과 억측을 불러일으키는데요. 최근에 김정은 국방위원장이 전면에 등장하지 않고, 김여정 노동당 제1부부장이 등장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A 김정은 국방위원장의 건강에는 문제가 없을 것 같고요. 북한에서 실질적 2인자라고 할 수 있는 김여정 노동당 제1부부장이 전면에 등장하는 것은 최고지도자인 김정은 국방위원장을 마지막 카드로 남겨두기 위함입니다. 최고지도자가 지금의 상황에서 전면적으로 나서게 되면, 이후 북한 입장에서는 협상의 여지가 전혀 없는데, 오히려 김정은 위원장이 뒤에 물러서 있기 때문에 향후 변화의 가능성을 남겨두었다고도 할 수 있습니다.
Q 일각에서는 북한의 급작스러운 행동이 미국의 트럼프 대통령이 재선에 성공할 가능성이 떨어져서 그러는 것이라고도 해석합니다. 트럼프 대통령이 속한 공화당이 집권하는 것보다, 민주당이 집권하는 게 북한의 입장에서는 더 안 좋은 것인가요?
A 그동안 미국은 공화당이 집권하나 민주당이 집권하나 북한과 거의 대화를 하지 않았습니다. 북한이 트럼프 대통령의 재선과 관련되어 지금처럼 행동한다고 보기는 조금 어렵습니다. 오히려 저는 미국의 공화당보다는 민주당이 북한을 포함한 한반도에 대한 이해가 더 있을 것이라고 봅니다. 북한 입장에서는 미국 말고도 중국과의 관계도 상당히 중요한데요. 중국이 2009년에 김정일 전 국방위원장의 뇌졸중 이후에, 한반도 문제에 적극적으로 개입했던 역사가 있습니다. 지금까지도 미국이 경제제재로 북핵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생각했다면, 중국은 북한을 군사적, 경제적으로 안정시켜서 핵을 포기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김정은 집권 이후에 북한이 핵무기를 완성해버렸다고 공언했기에, 중국 입장에서는 난감한 상황이 되어버렸습니다.
Q 코로나 19와 경제제재로 인한 북한의 경제 상황은 얼마나 심각한가요? 현재 상황에서 북한이 이 어려움을 타개할 선택지가 그리 많지는 않아 보입니다.
A 사회주의 국가가 경제를 살릴 수 있는 마지막 수단은 바로 관광을 활성화하는 것입니다. 관광은 일종의 국가를 개방하는 것과 마찬가지인데요. 김정은 위원장이 집권한 지난 7년 동안 원산 같은 곳에 엄청난 관광시설을 지어놓고, 중국 관광객을 많이 맞이할 준비를 하였습니다. 그러나 코로나 19로 인해 중국인이 북한으로 전혀 관광을 올 수 없기에, 북한 입장에서는 코로나로 인해 관광업이 큰 타격을 입었습니다. 이제 북한의 남은 선택지는 군수시설에서 민간 상품을 생산하는 겁니다. 그러나 근본적으로 북한의 경제가 변화되기 위해서는 한국전쟁 이후에 갖추어진 지역별 자력갱생의 시스템을 바꾸어야 합니다. 국가 전체적으로 선택과 집중이 되지 못하고 지역별 단위로 자급자족의 시스템을 갖추다 보니 경제적으로 엄청난 비효율이 발생하고 있습니다. 이것을 조금 더 효율적이고 경제적인 시스템으로 바꾸어야 하는데, 그 시스템을 바꿀 관료가 없는 게 현재 북한이 당면한 가장 큰 문제라고 할 수 있습니다. Q 최근에 박영사에서 "그루터기"라는 책을 북한선교 전문가들과 함께 출간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이 책은 분단 이후에, 북한에 남은 성도와 그 가족에 관한 내용을 담고 있다고 하는데요. 어떻게 이 책을 집필하게 되신 겁니까?
A 2003년부터 제가 아세아연합신학대에서 북한교회를 연구하고 그들은 연구하여 돕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분단 이후에 북한에 많은 성도가 남아있었을 텐데, 그들의 신앙과 그 가족들은 어떻게 되었는지 궁금했습니다. 그래서 오랜 시간에 거쳐 탈북자들을 대상으로 북한의 그루터기 신앙인들에 대해 연구를 진행했고, 그 연구의 결과물로 [그루터기]란 책이 출간되었습니다. 이 책에도 기록했지만, 북한과 같은 국가에서 기독교 신앙을 유지하고 그것을 다음 세대에 전수한다는 것은 참으로 불가사의한 일입니다. 그러나 그런 불가능해 보이는 상황에서도 북한에 그루터기와 같은 성도가 일부 남아있다는 것은 참으로 놀랍습니다. 저는 그들의 신앙을 책에서 ‘하늘 신앙’이라고 소개했는데요. 이는 그들이 직접적으로 하나님과 예수님을 이야기할 수 없으니, “하늘에 대고 빌어라”는 식으로 하늘을 의식하며 속으로 신앙 생활하는 것을 가리킵니다. 북한의 그루터기 성도를 연구하며, 하나님이 어떻게 70년 넘게 저렇게 신실한 믿음의 사람을 버려두시는지 의문이 들고 안타깝게 여겨졌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다 알 수 없지만, 저 그루터기 성도를 하나님이 나중에 한국교회를 각성시키고 부흥케 하는 존재로 남겨두신 것은 아닐까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그루터기 성도의 이야기를 들으면 우리의 마음이 뜨거워지면서 회개가 절로 나오거든요. 나중에 기회가 된다면 아직 알려지지 않은 북한의 그루터기 성도들의 이야기들을 더 수집하고 들어보고 싶습니다.
Q 올해 2020년은 한국전쟁이 발발한 지 70주년이 되는 해이고, 앞으로 30년만 더 지나면 한국전쟁 발발 100주년이 될 것입니다. 현재 남한의 청년 세대가 앞으로 한반도 평화와 북한의 복음화에 중추적 역할을 감당할 텐데요. 그들이 먼저 준비해야 할 것은 무엇일까요?
A 사실 현재 청년 세대는 북한 문제에 그리 큰 관심을 보이지 않고 있습니다. 그래서 저도 그들에게 강의할 때 많이 고민하면서 통일과 평화를 통해 그들이 누리게 될 지리적 이점을 이야기하곤 합니다. 지금은 분단으로 인해 남한이 섬처럼 고립되어 있지만, 북한과의 관계만 개선된다면 차와 기차를 타고 중국과 러시아로 얼마든지 다닐 수 있을 겁니다. 그래서 저는 분단 문제의 해결은 공간의 열림을 통해서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분단이 남북에 미친 영향은 말로 다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너무 큽니다. 저는 통일이라는 거창한 구호보다는 사실 탈분단이 먼저라고 생각합니다. 그렇기에 청년 세대가 이 분단의 아픔과 고통을 먼저 느껴야 합니다. 그래야 이 분단을 넘어서는 새로운 변화를 만들 수 있을 겁니다. [원본링크] http://www.newsm.com/news/articleView.html?idxno=23003